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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거기서 잠깐.
체중증량 프로젝트

"선배는 언제나 후배에게 실망하는 법이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내 위의 선배는 나와 내 친구들의 행동에 대해 실망하고, 또 나와 내친구들은 내 밑의 후배에 대해 실망한다.

오늘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축제를 하길래 한번 가봤다. 애들 수고 한다고 음료수도 사주고, 격려의 말도 할 겸, 뭐 실제로는 내일 있는 시험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늦게 해보기 위해서 간건가? -ㅅ-;

어쨋든 산 꼭대기에 있는 학교는 변함없을 줄 알았는데, 또 시간이 흐르니까 학교도 많이 변해있었다. 정신병원 마냥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민무늬의 벽은 붉은 벽돌로 모두 바뀌어 있었고 울퉁불퉁한 내리막길은 콘크리트로 모두 덮어놨다. 그렇지만 올라가는데 힘들다는 점 하나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150 미터 남짓의 고 경사를 벗어나고 보니 드디어 축제를 하는 장소. 학교 별관이 보였다. 기술관이었나? 어쨋든, 밖에서 보이는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 DAM 의 문구를 찾다가 눈살이 찌푸려졌다. 3층? 어째서 컴퓨터 동아리가 3층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부터 컴퓨터 동아리는 가장 넓은 공간인 4층을 차지했다. 그 만큼 컴퓨터 동아리는 보여줄 것이 많았었고, 사람들도 많이 구경을 왔기 때문이었다. 3층은 꽤나 좁아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동아리들이 차지했었다. 때문에 나는 점점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불길한 예감은 잘 빗나가지 않는다. 3층의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오고 DAM이라고 쓰여있는 곳의 문을 열어보니, 집 안방만한 공간에 컴퓨터가 무질서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회원인듯한 학생들 몇명이서 도화지에 로고를 그리고 있었다. 잠시 멍청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첫째로는 전시장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컴퓨터가 턱없이 부족했으며, 셋째로 내가, 아니 손님이 들어섰는데도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 시작 안하는 겁니까?"
"아뇨. 지금 열려 있는거에요."

그러면서 대답한 학생은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하러 가 버린다. 축제의 주체인 2학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2학년은 나름으로 갖추어 입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이드 안해줘요?"
"에.. 예? 가이드?"

적잖히 당황한 녀석들은 그네들끼리 수근거리며 가이드를 해줄 사람을 찾는다. 아마 그 때까지 가이드할 사람을 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야 너가해.' '가이드 어디갔어?' '몰라' '00 야 너가 해.' 이런 식의 대화가 끝나고 나자 1학년으로 보이는 듯한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서 안내를 해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반대방향으로 가이드를 한다. 사람이 엉킬것 같은데 동선 같은건 생각안해본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말해봤지 바꿀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도 꺼내지 않는다.

"이건 저희가 인터넷에서 주워온 ~~ 입니다."
주워 왔다라....
"이건 그냥 스캔한 만화책이에요."
"이건 비베를 이용한 간단한 게임입니다."
"이건 시를 이용한 간단한 게임입니다."
"이것도 인터넷에서 주워온 심리테스트 입니다."

"홈페이지나 웹 포트폴리오 같은건 없나요?"

"아.. 예 그런건 할 줄 아는애가 없어서요."

컴퓨터 5~6대를 지나고 다시 방명록이 놓여있었다. 이름..... 학교.... DAM 17기 라고 쓰자 가이드녀석이 전혀 놀랍지 않은 목소리로 "와 고 선배님이 오셨네. 형 여기 선배님 오셨어요."라고 말한다. 뭐 아무도 관심도 없다. 그래도 회장이란 녀석은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해준게 적었나보지?"
"아뇨 충분했습니다."

충분한데 인테리어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적어도 컴퓨터 본체는 가릴 수 있도록 천이라도 둘러 두어야 하지 않나? 컴퓨터는 또 왜이리 적은 걸까?

"학교에서 컴퓨터 지원을 안해줘서요."
"우리 때도 그랬어. 그건 자기가 가져와야지."

학교에서 동아리에 해주는 지원이 전무한 관계로 컴퓨터 동아리에서는 언제나 자기집에 있는 컴퓨터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회원이 20여명 되는 중에 컴퓨터가 고작 7대라는건 뭘 의미하는 걸까? 그나마 가져온 컴퓨터들도 모두 폐물이 다 되어가는 컴퓨터였다. 세컨컴이라는 이야기겠지. 그만큼 자기 물건이 아깝다는거다.

"아, 이거 음료수라도 사먹으면서 해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고 그냥 나왔다. 실망했다는 말은 안했지만 표정에 모두 들어나버렸다. 어지간한 눈치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라는 인사가 들렸는지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실망한 탓에 그냥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생각해봤다. 우리가 축제할 때, 선배들이 와서 실망한 얼굴로 이래도 되는거냐? 라고 말하며 돌아갔던 기억이 선하다. 선배들이 우리를 실망스럽게 봤던 것에 대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며 어리둥절 했었다. 지금 그네들도 그런 기분일까? 내가 무엇에 실망하는 것인지 모르는 걸까? 열정이 없다. 열정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뭘 보고 만족하거나, 실망할지 모르는 것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있어 단 한번의 축제를 후회는 남기지 않도록 해야할텐데, 그러한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렇게 형편없어 보이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이러면서 내가 해온 축제의 과거를 미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했던 축제는 적어도 이것보다는 좋았으니까.' 라면서 내 전 선배들이 실망했던 우리의 열정을 우리의 후배에 대해 실망하면서 미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언제나 후배에게 실망한다. 그것은 자신이 해내지 못했던 것을 후배 역시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후배들이 더 못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몸담았던 곳의 열정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동아리에 대한 사랑 때문일것이다.
2005/10/20 01:31 2005/10/20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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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누나
  2005/11/02 21:50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요건 좀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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